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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빚어낸 마법 :: 신석기에서 송원명청으로 이어지는 토기 특별전 '단니환화 摶泥幻化' 본문

고궁박물관 전시소식

흙으로 빚어낸 마법 :: 신석기에서 송원명청으로 이어지는 토기 특별전 '단니환화 摶泥幻化'

도순투 제이미 2024. 6. 26. 07:30

 

안녕하세요, 도순투 제이미입니다.

6월 25일,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낸 고궁박물원 207호 전시실의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 :)

오늘이 마침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꼭 기억해야 하는 중요한 날이죠? 사람은 흙(자연)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듯이, 휘몰아치는 혼돈의 국제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해 흙이 되신 수많은 순국선열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면서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충!성!


새로 선보인 토기 전시실 특징

고궁박물관의 전시구성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는데요. 상설 전시와 특별 전시입니다. 언제든 볼 수 있도록 항상 전시 중인 곳을 상설전시라 하고, 약 2-3개월 주기로 교체되는 전시관을 특별전시라 하는데, 사실 이번 207호 전시실은 원래 도자기 전시관이라 상설전시에 해당하지만, 205호, 207호 전시관 중에서 상대적으로 잦은 주기로 교체되는 전시관이 207호라서 도자기 전시라는 상설전시 범주 안에서 열리는 특별전시라고 하면 조금 더 정확할 것 같네요. (이해 안 되셔도 무방합니다...)

원래 '당 회도가채사녀용'이라는 당나라 미인상이 있던 자리였다.

 

이지타이완의 해설상품은 보통 1층 명, 청조 황실 공예품을 본 뒤 3층 청동기와 옥기를 보고 2층 도자기 전시를 보는데요. 어느 날 2층 도자기 설명을 하면서 "저게 바로 나라 시대 미인상 입니ㄷ.."라고 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미인상은 사라지고 난데없이 측면에 전시돼 있던 개 한 마리가 그 자리에 떡하니 앉아 있어서 당황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약 2주 간 새롭게 단장한 뒤 모습을 드러낸 토기 전시실! 뭐가 달라졌나 하고 봤더니, 입구에 없던 모니터도 설치해 놓았고요, 청 강희제의 알록달록한 다기세트가 있던 자리에는 훨씬 이전시대의 투박하지만 특색 있는 토기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당삼채의 비중이 조금 높아졌어요. 한 번 볼까요?


207호 전시의 테마, '단니환화 摶泥幻化'

 

전시테마인 단니환화摶泥幻化가 무슨 뜻이냐구요? 뭉칠 단에 진흙 니, 그리고 환화는 '마법에 가까울 정도로 극적인 변화'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의역하면 '흙으로 빚어낸 마법' 정도가 되겠군요. 실제로 도자기를 분류하는 방법은 아주 여러 가지가 있지만, 흙을 소성하는 온도에 따라 구분하기도 하는데요. 가마에서 고온을 낼수록 더 단단하고, 더 화려한 도자기들이 탄생했답니다.

'피부가 장난이 아닌데? 로션하나 바꿨을 뿐인데..'

 

모니터 하나 달았을 뿐인데 사진으로 담아내니 전시관 내부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어요. 고궁박물관은 일주일에도 네다섯 번 방문하는 사람으로서 유물은 정말 멋진데 고궁박물관도 이제 좀 내부 디자인을 새로 할 때가 왔어요. 동선을 고려한 유물의 배치라든지, 인기도에 따라 동선을 설정해 좀 인파를 분산시키거나, 관람객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보조수단으로서의 IT기술이 접목돼야 합니다. (경복궁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관을 보고 이마를 탁- 쳤죠.)

 

이번 전시에서는 신석기에서 오대십국 - 송에서 원 - 명 - 청으로 이어지는 시간 순서에 따라 전시품들을 배치했는데요, 그간 도자기 전시실에서 주로 송원명청 시대의 도자기 위주로 볼 수 있었던 데 반해, 그 이전시대의 토기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아래 사진처럼 기원전 5세기의 토기도 볼 수 있구요.

 


귀여운 동물을 빚어낸 토기들도 다수 등장했어요. 아래 토기는 3세기의 토기인데 두더지 아니면 땃쥐가 보이네요.

두더지 모양을 한 토기
올빼미모양의 토기


그리고 처음 보는 형태의 약간 조잡해 보이기도 하는 모양의 토기도 보였는데요, 이렇게 생겼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그냥 기본 토기의 형태인데, 목 부분에 잡다한 형상들이 잔뜩 붙어있어요. 토기이름을 보니 곡물 창고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아, 곡물창고? 그래서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상단에 '서주말기 모공정'과 비슷한 청동기 솥단지 형태가 보이네요. 정鼎은 상나라와 주나라까지는 식기이며 제기로 쓰였다가, 문헌 속에서 처음으로 향로로 바뀐 시점은 한漢 나라 때로 나옵니다. 사진 속 '곡창토기'의 제작 시기로 추정되는 3세기는 주나라 때와 가까우니, 정鼎을 식기로 쓰던 때라는 걸 알 수 있죠.


그리고 아래와 같은 매우 독특한 모양의 토기도 나왔습니다. 제가 지금껏 고궁박물관에서 봤던 토기들 중에서 가장 투박하면서도, 원초적이고, 이걸 만든 사람의 예술혼을 곱씹어 보게 되는 창작물인데요. 굴껍데기를 받침 삼아 그릇을 넣어놨습니다. 오대십국-북송시대로 이어지는 10세기에 나온 토기예요. 정말 그릇으로 사용하려고 만들었을까, 장식품에 불과했을까, 아니면 저렇게 기울여 사용하면 더 유용한 음식이라도 있었을까? 갖가지 상상을 자극하는 기물이죠. 도자기 전시관에 있는 다른 기물들은 다소 정형화된 모습임에 반해 이런 구조는 참 난해하면서도 유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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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위에 얹어놓은 토기. 옆으로 넘겨보세요.


공간디자인의 중요성, 전시품 배치에 따른 인상의 변화

207호로 이어지는 복도 정중앙에 위치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다가, 이제는 207호 안쪽 구석에서 잠시 쉬어가는 당대 미인상입니다. 전시품은 확실히 같은 기물이라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하는지에 따라서 관람객에게 풍기는 아우라는 다를 수밖에 없어요. 

이 여인은 이목을 끌지 못해 외로워할까, 아니면 이제야 쉴 수 있다며 안도의 미소를 짓고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도 유물의 진가를 재조명하기 위해 전시품들의 배치를 새롭게 하고 있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는데요, 다음 사진을 한 번 비교해 보시죠.


전>>

후>>

 

전>>

후>>

 

차이점이 보이시나요?  2020년부터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기증실 재개관 프로젝트를 맡은 이원진 학예연구사의 말인데요.

 

“박물관의 목표가 바뀌었습니다. 이전에는 많은 유물을 관람객에게 선보이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단 한 점의 유물이라도 관람객의 마음에 남기는 겁니다.” 

 

세계 4대 박물관 중에 한 곳인 대만국립고궁박물원이, 소장품이 많아 다양한 전시품을 관람객에게 보여주려는 건 좋지만, 이제는 변하고 있는 관람객의 눈높이에 맞춰 공간 디자인에도 신경을 써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다음 사진을 보시면 박물관 전시팀에서도 이런 트렌드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일부러 관람객이 없는 시점을 기다렸다 아래와 같은 사진을 찍어 왔습니다. 

 

위 사진은 '당 삼채'라는 토기인데요. 이렇게 큰 당삼채 토기를 마음껏 볼 수 있는 곳은 국립고궁박물원보다는 대만국립역사박물관에 가시면 더 많은 걸 볼 수 있지만, 확실히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보다는 저렇게 선택과 집중으로 하나를 놓는 게 관람객의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훨씬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대만국립역사박물관 3층에서 찍은 당삼채 집합.

 


그 밖에 다른 당삼채

 

앞에 있는 두 개는 원래 207호로 가는 복도에 나란히 전시돼 있던 토기인데요, 이번에 동료가 한 명 추가돼서 총 3명의 여인이 말을 타고 구기종목의 스포츠를 즐기는 중입니다. 당나라는 한족이 아닌 선비족이 세운 나라로서, 여인이 말을 타는 스포츠를 한다?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남성과 대등한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당나라 여인의 머리모양을 보시면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요, 이걸 고증하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이지타이완의 고궁해설상품을 신청하세요!(깨알홍보)


물고기의 상징성

 

제가 이지타이완 인스타그램이나 카카오톡 채널에 새로운 전시 소개를 할 때는 우스개 소리로 '붕어싸만코'를 닮은 토기가 나왔다고 했는데요, 사실 도자기나 회화등 예술사에서 물고기가 상징하는 바는 훨씬 심오한 의미가 있답니다. 그래서 유독 2층에서 회화 작품을 봐도, 도자기에 그려진 무늬를 봐도 물고기는 어딜 가나 나오는데요. 그 의미가 궁금하신 분들도 역시 고궁박물관 전문 해설 여행사, 이지타이완의 해설상품을 이용해 주세요. :)

 

여기까지, 대만국립고궁박물원 북부본원의 207호 전시실 '단니환화'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저는 꿈속에서 붕어싸만코를 먹으러 갈 거예요. 안 녕~